< 고려시대(高麗時代) >
고려시대에는 이곳에 고려궁궐이 있었다, 고려가 몽골군의 침략을 피해 1232년 강화도로 천도한 이후 최우(崔瑀)는 2,000 명의 군사를 동원 하여 이곳에 왕궁을 건립 하였다, 규모는 작으나,궁궐과 관아의 명칭을 개경과 같게하고, 뒷산의 이름도 송악 이라 하였다,
이후 대몽항쟁기 39년간 고려왕궁으로 사용 하다가 몽골군의 (화 친후) 고려왕이 개성으로 환도하게 되자 (1270년) 몽골의 요구에 따라 궁궐과 성곽을 모두 파괴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행궁, 유수부 건물과 함께 민가까지 들어서면서,고려시대 궁궐과 모습이 사라졌다, 현재의 고려궁지는 고려시대 궁궐의 영역 일부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본래는 동, 서, 남, 북,으로 (뻗어나간) 대규모 공간이었다,
< 조선시대(朝鮮時代) >
조선시대에는 고려궁궐터인 이곳에 여러 관청 건물을 세웠다
1622년(광해군 14)에 봉선전 (奉先殿) 태조 영정 봉안 을 건립하였으나, 병자호란때 소실되였고 1631년 (인조 9)에는 행궁 (行宮)을 건립아였으며 1695년 (숙종 21) 장녕전(長寧殿) 1713년 (숙종 39) 만녕전 (萬寧殿)이 차레로 세워져 조선 궁궐의 모습을 갖추었다,
1782년(정조 6) 왕실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왕립 도서관인 외규장각을 건립하였으나 병인양료 (1866년)때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습격 하면서 외규장각안에 보관중이던 서적을 약탈해가고 건물을 불 태웠다,
1964년 고려 궁궐 터는 사적 제133호“고려궁지”로 지정되였고 1977년 복원 정비되여 현재는 유수부 동현 이방청 강화 동족과 2003년 복원한 외규 장각이 있다,
2022년 6월12일 (일요일) 고향인 강화도를 시촬 (국립 강화 문화재) 옛 건물을 돌아 보았다,,
한류엔 뉴스통신 이철종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