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5 (수)

  • 흐림속초12.5℃
  • 흐림20.1℃
  • 흐림철원12.1℃
  • 흐림동두천11.0℃
  • 흐림파주11.1℃
  • 흐림대관령11.4℃
  • 흐림춘천20.6℃
  • 맑음백령도12.8℃
  • 비북강릉13.9℃
  • 흐림강릉15.7℃
  • 흐림동해16.7℃
  • 비서울12.3℃
  • 비인천11.7℃
  • 구름많음원주21.8℃
  • 맑음울릉도18.6℃
  • 비수원12.1℃
  • 맑음영월23.9℃
  • 구름조금충주22.5℃
  • 흐림서산11.8℃
  • 구름조금울진18.6℃
  • 구름많음청주21.6℃
  • 구름많음대전22.3℃
  • 맑음추풍령23.1℃
  • 맑음안동24.8℃
  • 맑음상주25.2℃
  • 구름조금포항24.1℃
  • 흐림군산16.0℃
  • 맑음대구26.1℃
  • 구름조금전주20.7℃
  • 맑음울산25.3℃
  • 맑음창원25.2℃
  • 구름많음광주21.1℃
  • 맑음부산22.7℃
  • 맑음통영23.0℃
  • 흐림목포15.0℃
  • 맑음여수23.8℃
  • 흐림흑산도13.7℃
  • 맑음완도23.2℃
  • 흐림고창14.2℃
  • 맑음순천23.1℃
  • 흐림홍성(예)13.9℃
  • 구름많음18.8℃
  • 맑음제주22.1℃
  • 맑음고산21.2℃
  • 맑음성산22.9℃
  • 맑음서귀포23.0℃
  • 맑음진주25.4℃
  • 흐림강화11.2℃
  • 흐림양평18.1℃
  • 구름많음이천18.7℃
  • 흐림인제14.7℃
  • 구름많음홍천21.3℃
  • 흐림태백15.5℃
  • 구름많음정선군21.1℃
  • 구름조금제천22.1℃
  • 구름조금보은22.8℃
  • 구름많음천안18.0℃
  • 흐림보령14.0℃
  • 흐림부여18.9℃
  • 맑음금산22.8℃
  • 흐림20.8℃
  • 구름많음부안15.4℃
  • 맑음임실23.0℃
  • 구름많음정읍18.7℃
  • 맑음남원23.9℃
  • 맑음장수22.5℃
  • 구름많음고창군16.2℃
  • 흐림영광군14.8℃
  • 맑음김해시24.9℃
  • 맑음순창군23.3℃
  • 맑음북창원25.7℃
  • 맑음양산시25.7℃
  • 맑음보성군24.6℃
  • 맑음강진군23.3℃
  • 맑음장흥23.1℃
  • 구름많음해남19.8℃
  • 맑음고흥23.3℃
  • 맑음의령군26.7℃
  • 맑음함양군24.7℃
  • 맑음광양시25.8℃
  • 흐림진도군17.1℃
  • 맑음봉화22.9℃
  • 맑음영주24.2℃
  • 맑음문경24.1℃
  • 맑음청송군25.7℃
  • 맑음영덕19.8℃
  • 맑음의성25.3℃
  • 맑음구미26.2℃
  • 맑음영천26.5℃
  • 구름많음경주시28.1℃
  • 맑음거창24.5℃
  • 맑음합천27.3℃
  • 맑음밀양27.1℃
  • 맑음산청25.5℃
  • 맑음거제22.5℃
  • 맑음남해24.1℃
  • 맑음23.4℃
기상청 제공
goodkce@hanmail.net 로고

한류

전체기사 보기

뿌리 韓流] 孤雲 崔致遠 先生, 誕降 1169週年 春享大祭 隆中 奉行

東方 人文의 巨木, 韓流의 元祖 東國 文學의 祖宗, 文章의 根源 人百己千의 努力과 誠忠의 表象

뿌리 韓流] 孤雲 崔致遠 先生, 誕降 1169週年 春享大祭 隆中 奉行

동문자(漢字)로 되고 흑백의 엄숙한(?) 분위기의 현수막을 보다가 늦봄에 보는 화사한 색다른 것이 마음을 밝게한다, 헌관(주연)들에 이어 뒤따르는 제관(스탭)들 어디서나 스텝들의 노고에 의해 주인공은 빛나는 법이다. 양지에서 모양좋은 것보다 음지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이 더 존경 받는 세상은 건강하였다, 그것이 고운 선생의 묵묵한 교훈이라 생각한다. 사진 권오철 2024년5월10일 오전 11시 부터 남양주시 진건읍에 자리잡은 ‘최치원 기념관’에서는 경주최씨가정공파 주관으로 고운 최치원 선생의 춘향대제가 열렸다. 제례는 일반적인 절차에 따라 식전행사인 국민의례,최창근 관장 인사,내빈소개등이 있었다. 여기서 한국성씨총연합(수석 상임고문 姜錫星), (사)뿌리문화보존회(이사장 석민영),한국종중사무총장협의회원등 10여명이 각 문중을 대표하여 참석한 것은 매우 이채로웠다. 또 멀리서 의성 고운사 인근 최치원문학관의 김정희 관장이 특별히 참석하여서, 10월의 축제와 고운사 사찰음식등에 대해 중식시간에 담소 하면서 고도 의성의 발전에 있어 터닝포인트를 예시하여 주었다. 입구의 ‘최치원기념관 건립 유래비’에는 문창후 최치원의 11세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신인 최청(崔淸) 선생의 무덤 아래 관가정공파에서 부지 제공, 야수공파와 참판공파에서 기금을 조성하여 2004년에 착공, 2012년에 관가정공파 전회장 최종철, 최병원, 야수공파 회장 최광석, 참판공파 회장 최창근 등이 공동 추진위원장이 되어 공사를 진행하여 완공하게 되었다고 한다. 2014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방중 당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고운 (孤雲) 선생의 시범해(詩泛海)의 구절 괘석부창해(掛席浮滄海)하니 장풍만리통(長風萬里通)이라 인용하여 한중(韓中)간 천년의 우호를 역설하여 더욱 유명하였다, 오늘 대제의 분정기에 삼헌관에는 최한준(야수공파),최석명(문의공파),최민식(몽경파)이고 분헌관에는 최우상(좌랑공파),최정섭(몽경파)이고 집례는 최귀식(승지공파)이 맡았다. 제관은 최상원(감사공파),최상원(문의공파),최병학(충의공파),최원근(문의공파),최해성(야수공파),최한일(야수공파),최성규(승지공파),최태규(충의공파),최영균(승지공파)등이었다. 최치원의 가문은 신라의 6두품 중에서 신라 유교를 대표할만한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는데, 최치원은 그 중에서 신라 말기 3최의 한 사람으로 6두품 출신 지식인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12세의 어린 나이로 중국 당나라로 유학을 갔으며, 유학 7년만인 18세에 시험에 합격하였다. 이후 885년 귀국할 때까지 17년 동안 당나라에 머물면서 여러 문인들과 교류하며 많은 글을 지었다. 29세에 신라로 돌아와 당나라에서 배운 세상을 다스리는 능력을 실천해보려 했으나 귀족 중심의 신분체제의 한계와 신라말기 국정의 혼란함을 보고 중앙에서 먼 직책을 맡기도 하였다. 10여 년 간의 관직에 있으면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사회개혁안을 제시하였으나 당시의 귀족들에게 막혀 실행되지 못하였다. 신라왕실에 대한 실망과 좌절을 느낀 최치원은 40세의 나이로 관직을 버리고 숨어 지냈다. 그러나 당시 사회에 대한 고민은 후계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희생정신. 희(犧)는 소의 기운을 생(牲)은 살아 있는 것을 의한다. 통돼지 한마리의 젯상, 음복주를 참석자들이 나눠 못지 못한 이유는 아마 마뜩하지 못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좌는 소박한 문창후 최치원의 한시 한자락 그의 문장은 도적의 간담을 서늘하게도 할 정도지만 소박한 시 한수는 가슴을 적신다. 요즘 한시대회의 어줍은 고선관이 본다면 첩자니 운자니 하면서 초등학생 수준이라 비웃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진 권오철 코리아 한류의 원천은 모두 고운 최치원으로 부터 시작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의 인물 다산 정약용을 수구의 패거리가 정조 사후 멀리하고, 선각자 김대건, 유길준의 그 엄청난 혜안을 멀리하여 멸망의 길을 걸었듯이, 국제적 감각의 고운 선생을 미관말직으로 내몰은 신라말의 골품제도는 결국 국난의 길로 갔으니 화려한 통일신라의 문화와 대진국 발해의 남북국의 종말은 지당한 것이었다. 인재를 두고 이용하지 못하고 부당하게 견제한 소인배들이 득세한 댓가는 혹독한 것이었다. 이것은 오늘날 이 땅에도 그대로 적용 되고 있다는 것이다. 시대 변화를 망각한 무리들의 행위가 가져올 재앙을 이 고운 최치원 선생이 1200년을 넘어 증언하고 있다. 이 고운기념관이 있는 남양주에 다산 신도시가 선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중국이 최치원을 띄우는 것은 그들이 자랑하는 대당국의 변방, 계림도독부,웅진도독부등의 추억을 살리려는 중국이 가장 바라는 한중관계를 상징하는 밑밥인 것이지만, 최치원의 이 한마디로 모든게 정리됨을 그들은 모르고 있다. ‘난랑비서’에 國有玄妙之道曰風流. 設敎之源, 備詳『仙史』, 實乃包含三敎, 接化群生. 且如入則孝於家, 出則忠於國, 魯司寇之旨也;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周柱史之宗也; 諸惡莫作, 諸善奉行, 竺乾太子之化也 라하니, 불교의 석가도 도교의 노자도, 유교의 공자도 다 코리언의 풍류지도 아래에 있음을 통쾌하게 설파하고 있다. 그리고 미확인 통설이나 9천 년 전부터 구전되어오다가 5천 년부터는 한민족의 고유한 글자인 ‘녹도문’으로 전해오던 천부경(天符經)을 해독, 한문으로 번역하여 지금 우리에게 전한 공로가 무엇보다 지대하다. 춘향대제의 헌관 제관, 미리 연습을 좀 했으면 하고 한글 해설 여성해설은 '--하시요~'하는 것이 어색하였다. 설명은 그냥 낭랑하게 말하면 그 뿐이다. 참석한 내빈들 각 성씨에서 와서 축하해 주었다. 사진 권오철 천부경은 인문과학이 끝없이 증명해야 할 ‘오래된 미래의 경전’이다. "우주는 시작 없는 시작이고, 끝없는 끝으로 존재한다”는 ‘일시무시 일종무종일(一始無始 一終無終一)’은 이미 과학을 초월한 우주론이다. "사람 안에 하늘과 땅이 하나로 녹아들어 있다”는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의 다섯 글자는 인간 모두가 한없이 존귀하고 평등하다는 영원히 빛나는 인문학적 가르침은 이미 서토(西土,中原)를 넘어서는 문화의 원류임을 증명하고 있다. 고운 최치원 없는 한류(韓流)는 존재 할 수가 없다. 지금 각종 고운 최치원 관련 춘향제,기념행사가 많은 데 대표적인 것은 정읍 무성서원 춘향제, 함양 상림공원 춘향례, 홍성군 쌍계계곡 춘향대제, 부산 해운대 동상앞 춘향례, 부여 임천향교 18현 춘향례, 합천군 가야먄 농산정 추모제, 화성 팔탄 금산사 춘향제, 의성 고운사 문학관, 의성 사촌(점곡)출생지? 처가,中國揚州崔致遠紀念館,하남의 최치원도서관, 창원의 강선대등이다. 애초 조감도 전형적인 재사 모습, 중간은 제막식, 오른 쪽은 변모한 철장속의 건물, 잔디도 없는 척박한 모습, 다시 원복이 될 날을 바라며 오늘 이 기념관은 만고 충신 최청(崔淸) 선생의 묘소 아래 있으니 의미는 크나 그 설립의 당위성, 준비성에 문제가 있었음은 황량한 전경이 애초 조감도와 또 낙성식 장면과 상당히 다르다는 것으로 잘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고운 최치원이 만고풍상을 겪으면서 고국 신라의 멸망을 예상하면서 가슴 아파한 그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제 또 한 번, 고운선생의 원력(願力)을 빌어 그 원복(原復)을 모두 바라는 바이다. (글 권오철 기자) 현판 한쪽 구석에 쓸쓸히 있으니 이렇다면 도리어 최선생에 대한 욕이 아닌가. 종반이 아니라도 국가적으로 신경써야할 사안이다. 고운 최치원을 빼고 코리아 한류를 논하지 말라! 그의 국제적 이해와 각고의 노력은 당연히 코리아의 사표로서 차고도 넘치는 스토리 텔링을 가지고 있다.

世遺 韓流] <宗廟大祭> 비 속에서도 융중 거행, 그 원상회복을 바라는 …

文의 보태평, 武의 정대업 세종성대의 표상 일제의 간악한 음모에 일그러진 왕업의 끝 아직 외세의 그늘에 잔존하는 왜색을 없애야

世遺 韓流] <宗廟大祭> 비 속에서도 융중 거행, 그 원상회복을 바라는 90순의 절규!

비가 오는 종묘, 임진왜란 왜군의 주둔지, 그러나 그들도 이곳을 범접치 못하였다. 세계최대의 건물 그 정제된 우아함은 세계문화유산(世遺)로 손색이 없다. 사진 권오철 2024년5월5일 매년 첫주 일요일에 열리는 종묘대제가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원장 윤순호)은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최영창),종묘대제봉행위원회(종묘제례보존회·종묘제례악보존회)은 낮 2시 종묘에서 2024년 종묘대제를 봉행했다. 종묘 정전의 보수공사로 인해 영녕전에서 비오는 중에 진행되었다. ‘종묘대제(宗廟大祭)’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의 길례(吉禮), 흉례(凶禮), 군례(軍禮), 빈례(賓禮), 가례(嘉禮)중에서 길례(吉禮)에 속하는 의례로 임금이 직접 거행하는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한 제사로 1969년 복원된 이래로 현재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무형유산으로, 왕실의 품격 높은 의례와 무용, 음악이 어우러진 종합적인 의례로 그 문화적 값어치를 인정받아 200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으로 올랐다. 2022년 맑은 봄 날 우아하게 울려퍼지는 종묘제례악의 음악과 춤 그러나 이것이 진정 세종대왕이 만든 그 음양의 법칙에 따라 재현되었는지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 권오철 몇 년전 종묘대제에는 전례에 따르는 종묘제례악이 있고, 이는 제사용과 잔치용이 있다. 그런데 이것이 애초 세종조에 이루어진 것과 다르게 일제시대에는 왜구토벌등에 대한 가사가 사라지고 제국으로의 위상을 고의로 친일 세력에 의해 왜곡돠어서 바로 잡은 적이 있다. 그러나 아직도 그 복장도 수시로 변하였고, 음악도 규모가 축소되고, 특히 ‘시용무보’에 따르는 원칙에 의해 전통적인 모습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다는 견해가 있다. 이 시용무보 또한 현존하는 것이 세종조 만들어진 것과 같지 않아서 근본적으로 왜곡된 상태에서 춤이 재현되고, 의상의 색깔도 청색이나 일제의 상징 썬(SUN)담배의 색깔로 하라는 권력자의 뜻에 따랐다는 말도 있을 지경이다. 근세 국악계의 중심인물 또한 친일파(김기수,함화진)로 기록 되었으니 그리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수년전 ‘종묘제례악 원상복구위원회’를 만들어서 공동회장으로 요로에 진정하고 국회세미나 까지 열었던 기자의 입장에서는 그 당시 이를 위해 애쓰시던 김룡(金龍, 前 국립국악원 악사장, 처용무 인간문화재, 종묘제례악연구가)선생을 만나고 감회를 들어보았다. ‘일제에 의해 왜곡된‘종묘제례악’의‘일무’를‘시용무보’에 따라 원상회복하라!‘ 이것이 한국전쟁 참전 보훈용사인 그는 얼굴,심장,손가락에 총을 맞은 흔적이 있다. 청각장애와 손가락문제로 악기를 다루는 데 애로가 있어서 무용 쪽과 행정을 맡았다고 한다. 종로 체부동 출생이나 선친이 일본 불교대학을 나오고 스님인 백성욱 전 내무장관등과 친하여서 김룡이라는 이름은 만해 한용운 선생이 지어주었다고 한다. 92세의 나이에도 카랑카랑하게 각종자료를 제시하면서 종묘제례악의 원상회복을 역설하였다. 극일응 위한 김룡의 종묘제례 일무보 2022년 발향, 그 전 처용무와 태극도설, 그리고 그에 따른 시용무보의 춤사위를 재현하교져 하는 일생 사진 권오철 종묘제례악은 ‘종묘 건축물’,‘종묘제례’와 함께 세계문화유산이다.인류의 귀중한 문화 자산으로 세계적을 보호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종묘는 천단,사직과 함께 고대 국가 왕조의 존재 의미이다.역대 왕과 왕비들에 대한 신주를 모시고 춘추로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종묘제례악은‘종묘제례’에서 연주되는 음악,가사,무용으로 이루어지는데,이것이 일제강점기에 교묘하게 축소 왜곡되고 이에 대해 가사는 일부 원상복구가 되었고,음악 또한 그렇게 되었지만,무용인‘일무’의 동작은‘시용무보(時用舞譜)’에 의해 기록되어있다. 여기서 기존의 국악계가‘시용무보’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여서 엉성한‘일무’가 되어서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와 한국 전통문화가‘한류’의 붐을 타고 넘쳐나는 이 시대에 이의 시정이 필요하는 것이다. 이 왜곡과 몰이해에 대한 배경과 과정에 대해서는’이왕직아악부의 조직과 활동(박사논문,이수정,한국학중앙연구원)’에 잘나타나 있다. 종묘제례보존회의 입장은 이미 1980년 지적된 점을 개선하여 문제가 없다고 하고 있지만,이‘일무’의 동작을 도표로 만든‘시용무보’는 세조때 만들어 진 것으로 알려져있다.시용보태평지무(時用保太平之舞)와 시용정대업지무(時用定大業之舞)의 순서와 동작 술어를 그림과 문자로 기록한 무보(舞譜)이다. 지난 수십년간 꾸준이 이에 대한 시정을 위하여‘종묘제례악원상회복보존회’를2019년에 결성하고 운동을 벌려온 바도 있다.국회세미나까지 하였지만 지금은 시들하게 되었다. 이제 구순의 나이에 마지막 시도로서‘극일을 위한 김룡의 종묘제례 일무보’을 얼마전 출판하고 이 책은 QR코드를 이용한 동영상을 보도록 하였다. 그러나 전문분야에다가 일반인들의 관심이 없는 내용이고,다만 가사의 변조는 누구나 이해하니 개선된 것일 뿐이다. 잠깐 20여년전 지적한 내용은 당시 보도 내용을 인용하여 보면 이렇다. ‘주요무형문화재 제39호‘처용무’기능 보유자인 김용씨는1960-80년대 국립국악원에 재직하며 일무가 다르게 전승되고 있음을 알았고 그동안 대학강단과 무대를 통해 원형찾기 작업을 계속해왔다.그는"현재 일무를 계승·보존하며 공연하는 인간문화재와 그 제자들이 원형과 다른 춤을 추고 있다”며"특히 전통문화의 산증인들이‘시용무보’에 기록된 일무 동작의 형성과정을 숙지하기는커녕 기록을 무시한 채 스승의 동작을 흉내내고 있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일무에서 추어지는‘무무(武舞)’는 모두 검술동작인데 일무를 추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서 손만 움직일 뿐,그것이 검술적 공격과 방어동작을 상징하는 의식용 동작임을 모르고 따라할 뿐이라고 자탄했다.김씨는 직접 팔을 굽히고 펴는‘굴신(屈身)’,상하로 팔을 움직이는‘승강(昇降)’,횡으로 벌렸다 오므리는‘개합(開合)’등 동작을 보여주며 종묘제례악의 정확한 기본동작 몇가지만으로 창작무용을 안무할 수 있을 만큼 과학적이라고 했다. 종묘제례 일무 원형이 기록된‘시용무보’는 악보와 춤 동작을 담고 있으며 연대미상이다.그러나 김씨는 자신의 논문‘시용무보의 편찬연대고’를 통해 세조9년(1463년)으로 잡고 있다.그는‘시용무보’에 나타난 음악과 무용을‘세조실록악보’ ‘대악후보’ ‘속악원보’등과 비교해 세조때라고 추정하고 있다.김씨가 제시한‘시용무보’는 원본을 영인한 것으로 국립국악원에서 81년‘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4집으로 발간한 것이다.현재 종묘제례 일무의 무보(舞譜)로는 유일한 것으로,궁중정제나 민속무용에서 이와같이 정확하고 상세한 무보는 전무후무하다는 국악학계의 평을 받고 있다. 지난날 그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메워지지 않는 것이니 이제라도 현학들이 전에 한예종이 시도한 것과 같이 또 권오성 박사의 협조가 있었던 것 처럼 참 된 종묘제례악 구현이 계속 되어야 항 것이다. 사진 권오철 김씨는‘시용무보’와 현행 일무 비디오를 비교하며 수없는 오류를 지적했다.특히 무보의 유실된 부분이 정정·보완되기는커녕 근거없는 동작으로 채워졌고, ‘시용무보’에선 한번 허리를 굽히는‘외휘’에서 세차례나 허리를 굽히고,양손 사위도 무보와 달리 건너뛰는 동작이 많다고 지적했다.그는 유실된 예로▲‘정대업지무’중‘소무’앞부분▲‘정대업지무’중‘영관’의 경우 제목과 무보의75%▲‘보태평지무’중‘귀인’에서 합형(손을 가슴에 모으는 동작)이후 무보의70%등을 각각 들었다.또"일무의 음악은 시작과 끝이 정해지지 않은 부정형 장단인데도 강유와 완급을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부정형 장단음악과 정형의 무용이 완벽히 일치된다”며"현행 일무를 추는 이들은 동작형성의 배경도 모른 채 동작과 음악을 억지로 꿰맞추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그는‘일무’의 왜곡전승을 방치한 행정당국과 관계자들에게 공개토론을 제의했다.김씨의 외로운 투쟁은 이제 정면승부만 남겨둔 셈이다.그러나 문화재 지정후38년간 일무를 지켜온 인간문화재와 이왕직아악부·국악사양성소를 거쳐 국악계를 이끄는 원로들의 심한 반발이 예상된다.‘라는 것이다. 즉 세계문화유산이고 더구나 제례악은 중국 본토에서도 사라져서 90년대 한국에서 배워가는 입장이었는데 이렇듯 그 기본이 부족한‘일무(佾舞)’의 공연은 60년 국악인생에 있어서 부끄럽고도 안타깝다는 생각 뿐이다. 민간의 노력도 한계에 다다른 지금 보다 선지적이고 전향적이며 전문적인 인력이 보충되어 나가야 할 것이 바로 우리 국악계의 소명일 것이다. 다음카페. 사진 권오철 또 다른 시도는 기존에 발표한 시용무보에 의한 무절구조 분석을 통한 본 필자의 동영상을 그래픽화 하고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동영상과 서적을 참조하면서 강의장면을 남겨두려고 한다. 이제 많은 시도는 끝나간다. 1952년 겨울 영월 어느 산등성이에서 학도병으로 참전 10명의 첨병 부대원(한국군 6명, 미군 4명)과 전투중 얼굴과 팔에 두발의 총알을 맞고 유일하게 목숨을 건지고 이토록 긴 삶을 이어준 것은 이를 위해 마지막 임무를 다하라는 이땅을 살다간 조상님들의 가호이기 때문이리라 믿는다. 부디‘종묘제례악원상회복보존회’의 지속적인 존속과 활동을 바라면서 마지막 필을 놓는다. 오늘 어린이날 종묘제례악이 우천과 건물 수리로 제대로 행해지지 못한 것은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글 권오철 기자) 종묘제례를 공연으로 구현하여 세계을 돌고 있지만. 그 뻣뻣한 춤의 추임새는 과연 세종시대와 같은가?

축제 韓流] 4월 20일 ‘제3회 파주 월롱산 철쭉제’- 꽃 내음 가득한…

국제평화자유도시로 가는 시그널 민족화해와 협력으로 가는 그 길 철쭉의 명예와 정열이 주는 느낌

축제 韓流] 4월 20일 ‘제3회 파주 월롱산 철쭉제’- 꽃 내음 가득한 월롱산 철쭉동산으로 가는 봄 나들이!

躑躅花開紅照水,鷓鴣飛繞青山觜 철쭉은 만개하여 물가를 붉게 물들어 비추이고.. 꿩은 푸른산 귀퉁이를 날아도는니 당나라 시인 황보송 사진 파주시청 파주시 월롱면이 주최하고 월롱면 주민자치회가 주관하는 ‘월롱산 철쭉제’가 오는 20일 월롱시민공원(월롱면 덕은리 산 134-1)에서 세번째 개최된다. 월롱산 정상부에 철쭉동산이 조성된 지는 불과 4~5년밖에 되지 않았다. 원래는 수십 년 전 만들어진 군 진지와 야외훈련장, 헬기장 등이 이 일대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2016년부터 파주시와 월롱면 주민들, 그리고 군 장병들이 방치된 군 진지 폐타이어 1만여 개를 치워버리고 ‘명품 월롱산 가꾸기 프로젝트’를 펼쳐 지금까지 10만 주가 넘는 철쭉을 식재해 철쭉동산이 만들어졌다. 그런 까닭에 지금도 철쭉동산 곳곳에는 차량은폐진지, 군사도로, 운동장 등 군사시설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그 나름대로 특색 있는 풍광의 일부로 녹아든 느낌이다. 특히 지난해엔 보지 못했던 액자형 포토존도 새롭게 눈에 띄고, 철쭉동산 산책로에 깔끔한 야자매트도 깔렸다. 이번 행사에는 참가자 모두가 직접 참여하며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철쭉사진 콘테스트’ 공간에서는 참가자 전원에게 월롱산 철쭉을 배경으로 촬영한 스마트폰 사진을 2장씩 인쇄해 주며, 희망자에 한해 인화한 사진으로 콘테스트에 참여할 수 있다. 전국에충북 단양 소백산 철쭉(5.23-5.26), 경남 합천 황매산 철쭉(4.27-5.12), 전남 화순 수만리 철쭉공원 (4-5월), 군포 철쭉동산(4.20-4.28),서울 불암산(4.20-4.28)등 이맘때 축제가 많다, 사진 파주시 봄바람에 흔들리는 꽃 풍경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꽃 풍경 만들기’ 체험관과 ‘떡메치기 체험’을 한 후 인절미를 맛볼 수 있는 체험관, ‘공기정화식물 만들기’ 체험관 등이 운영된다. 각 체험관의 체험비는 1,000원으로, 축제 운영관에서 체험권을 구매한 후 참가할 수 있다. 봄꽃을 얼굴에 그려 넣을 수 있는 얼굴 그림(페이스페인팅)은 많은 참가자들이 즐길 수 있도록 무료로 진행된다. 또한, 남녀노소 모두가 참여하며 즐길 수 있는 ‘명랑운동회’도 운영된다. 제기차기, 줄넘기, 투호놀이, 훌라후프, 신발양궁 등 다양한 체육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으며, 예선과 결선을 거쳐 우수자에게는 소정의 상품이 지급될 예정이다. 이외에도 개막 및 폐막 공연, 태권도 공연, 주민자치 수강생 공연 등 다양한 공연이 펼쳐진다. 최성근 월롱면 주민자치회장은 "월롱산 철쭉동산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그간 월롱면 주민들이 힘을 합쳐 노력해 왔으며, 특히 올해 주민자치회 자치계획형 사업 등을 통해 1만주 가량의 철쭉을 추가로 심었다”라며, "면민 모두가 함께 가꿔온 월롱산 철쭉동산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리며, 축제에 많은 참여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김지숙 월롱면장은 "‘사랑의 즐거움’이라는 철쭉의 꽃말처럼 이번 축제를 통해 사랑과 즐거움이 가득한 월롱산 봄 정취를 가득 느끼시기를 바라며, 파주 대표 봄꽃 축제, 더 나아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봄꽃 축제가 될 수 있도록 향후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이겠다”라고 전했다. 제3회 월롱산 철쭉제는 오전 10시 30분 개막 공연을 시작으로 오후 4시까지 진행된다. 방문객들의 편의를 위해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경의선 월롱역과 행사장을 오가는 순환 버스가 운행된다. 그리고 이 지역의 파주 월롱산성지(坡州 月籠山城址)는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 덕은리 산138에 있는 산성 터이다. 2004년 5월 17일 경기도의 기념물 제196호로 지정되었다. 백제산성 터로 알려진 곳.경기도 기념물 제196호 예로부터 신산으로 알려져 있는 월롱산 나지막 하지만 전략적인 요충지이다. 사진 네이버 탄현면 금승리와 월롱면 덕은리, 그리고 금촌 야동동에 걸쳐 우뚝 솟아 있는 해발 246미터의 월롱산은 예로부터 신산으로 알려져 있다. 월롱산 내령은 크게 두 개의 봉우리로 나누어져 있는데 월롱면 덕은리와 야동동 쪽을 ‘파주 월롱산’ 이라 하고 탄현면 금승리 쪽을 ‘교하 월롱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월롱산 서쪽에 월롱산과 해발높이가 비슷한 기간봉이 있으며 이곳에는 측량에 이용된 기가 꽂혀 있어 깃대봉으로 부르기도 한다. 월롱산 정상에 오르면 사방으로 파주 일대를 모두 조망할 수 있어 월롱산은 천연 요새와 같은 곳이다. 그 동안 문헌적으로 월롱산성이 존재하고 있음은 보고되었으나 구체적인 산성의 규모와 실체에 대한 조사가 없었다. 그러나 경기도박물관의 정밀 학술조사에서 월롱산성이 임진강과 한강 하구 지역을 통제하던 초기 백제의 주성 역할을 담당했던 성으로 밝혀졌다. 월롱산성은 동서남북이 벽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의 외벽은 거의 20미터 이상이 절벽인 자연지형을 이용하였고, 현재 내벽의 대부분은 정연한 석축형태를 보이지 않고 일부 석재만이 노출되어 있다. 문지는 동문지, 서남문지, 서북문지, 북문지가 확인되며 동문지와 북문지를 제외한 서남문지와 서북문지는 자연암반을 계단 모양으로 깎아 내면을 조성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제 평화와 통일의 도시 파주에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이사야2, 4)라는 말과 같이 축제의 한류는 평화의 한류로 이어지고 민족의 염원인 통일 향해 한 걸음 닥아가는 진달래과 철쭉의 사랑의 정열과 명예 그 의미를 새봄과 함께 느끼며 평화를 향한 새로운 기운을 만끽하고 있다. (글 권오철 기자)









포토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